안녕하세요. 파안장학문화재단 2024-2 N차 장학생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전공 박헌수입니다. 전공을 통해서도 유추가 가능하듯이 저는 중등학교 역사과 교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왜 교사를 꿈꾸게 되었는지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들 초중고를 졸업한 현 시점에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이 계실 것입니다. 가장 좋았던 선생님을 기억할 수도 있고, 가장 무서웠던 선생님을 기억하실 수도 있습니다. 좋지도, 무섭지도 않지만 독특해서 기억이 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현재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제게 상처를 준 선생님들이 생각이 납니다.
저는 8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일을 하시느라 매우 바빠 저와 형 2명까지 교육하시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나쁜 길로 빠졌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고 PC방에 갔습니다. 학교에 가끔 가더라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학교에 돌아갔을 때 그곳은 너무나도 새로운 공간이었습니다. 대부분에게는 집과 같이 익숙한 공간이었을 테지만, 저한테는 다른 세계와도 같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환경이 너무 어색했습니다. 당연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도 없었습니다.
내심 학교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해주는 선생님의 도움을 바랐습니다. 초등학교는 대부분의 과목을 담임선생님이 가르치시기에 담임선생님이 곧 저의 모든 것을 보호해주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방치를 하면 모를까 저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음악시간에 반 친구들이 전부 음악실로 이동했을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저를 따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씀이 “너는 왜 이렇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유로 크게 혼을 내셨습니다. 심지어는 너가 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건지 반성문을 써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어울리지 못하는 게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곧 저의 모든 걸 좌우하시는 분이셨기에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정답인 줄 알았습니다. 이때 받은 상처는 계속 잊히지가 않았습니다.
6학년이 돼서도, 중학교 1학년이 돼서도 저는 학교에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죄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반성문을 쓸 만큼 창피한 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6학년 생활은 더욱 두려웠고, 중학교로 올라가기 직전에는 제 몸과 마음이 무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중학교에 입학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하교 이후까지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겨났습니다. 더 이상 PC방에 가지 않고 학교에 가도 친한 사람이 많았기에 학교생활이 나름 즐거워졌습니다. ‘왜 이런 학교생활을 초등학생 때는 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를 깊게 품을 만큼 즐거웠습니다. 이제 학교생활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받은 상처가 치유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은 제게 또 한 번의 큰 상처를 주셨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유지한 저의 가정사를 반 친구 대부분에게 말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와서 “야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너 아버지 돌아가셨고 기초생활수급자라매?”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심장은 덜컹 내려앉은 기분이었고, 발가락부터 시작되어 온몸에 작열감과 저림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전까지 친구들 사이에서 “재미있고 활발한 친구”라는 정체성을 가졌었지만, 이후부터는 “한부모가정, 기초생활수급자인 불쌍한 친구”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저를 불쌍하게 보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이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내가 숨기고 싶어한 것들을 왜 나의 허락도 없이 누설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치 판단 능력이 없던 초등학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상처는 더욱 깊게 다가왔습니다.
이미 2년이 넘게 흘러버린 5학년 때의 상처도 제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되새김질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저의 정체성을 나의 원함과 상관없이 잃어버린 채 지내야만 했습니다.
사람이 참 신기하게도 같이 지내다 보면 그 사실을 망각하듯이, 중학교 2학년 때쯤이 돼서는 1학년 때의 사건도 잊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또다시 선생님께서 저의 가정사를 누설하셨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의 가정사까지 드러내시면서 저는 더 큰 동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편히 친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잘해주는 친구에 대해서도 ‘내가 불쌍한 걸 알고 이렇게 하는 건가?’라는 피해망상까지 생겼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저의 비밀을 지켜주시는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담임선생님께서는 그동안 제가 가정사의 누설로 많이 힘들어했던 걸 잘 아셨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고등학교의 새로운 담임선생님에게까지 전달을 해주셨습니다. “이런 상처가 있으니 담임선생님께서만 아시고 잘 보살펴 주길 바랍니다. 아이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비밀을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셨습니다.
덕분에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고등학교 2학년 때도 이 메시지를 똑같이 전달하고, 제가 따로 선생님께 찾아가서 “이런 일이 있었으니 꼭 좀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을 했음에도 지켜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저의 가정사를 언급하셨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겪었으니 제발 고등학교에서는 잘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나름의 노력까지 했지만, 전부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 또다시 저의 정체성은 불쌍한 친구로 인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상처를 드러내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이 일들을 계기로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받았던 상처와 선생님들의 안일한 행동에 대해 같은 교사로서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할 거야.’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학생의 마음에 대해 제가 학창시절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저는 학생들에게 사랑만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상처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인지라 혹 실수하더라도 학생한테 진심으로 사죄하고 잘못을 비는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역사’의 대표적 교훈인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지혜롭게 한다.”는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말입니다. 제 인생에서도 통했습니다. 학창시절의 아픈 과거를 통해 현재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현재 나는 어떤 상황인지를 돌아봤습니다. 마침내 역사교사라는 꿈을 가졌고, 같은 교사로서 과거의 교사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를 돋구는 동시에 인격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혜로운 교사가 되고자 다짐했습니다.
지혜로우려면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학을 주로 공부하는 사학과에서 4년의 과정을 마치고, 교육학을 주로 공부하는 교육대학원에 진학한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역사교사를 간절히 꿈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교사 중에서 저는 한 사람에 불과한 존재가 되겠지만, 저 한 사람이 깊게 쓰임을 받아 많은 학생에게 좋은 추억과 희망을 주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날까지 공부를 놓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현재 학업과 진로를 택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매우 다양하겠지만, 우리 서로 응원하는 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같은 파안장학문화재단의 일원으로서, 장학생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제가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것처럼 여러분들과 저 모두 완주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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